유명 전투 작전 사판 · WarTable

중국과 세계의 유명한 고대 전투를 실제 지형 위에 재현: 장평, 거록, 관도, 적벽, 비수와 함께 테르모필레, 가우가멜라, 칸나이, 헤이스팅스 등 세계 고대·중세 전투를 실제 고도 지형 위에서 빛 무리가 행군·교전·화공·야습으로 보여 주고, 자막이 전황을 한 문장씩 설명합니다. 병력 변화, 전투 개요, 승패 원인, 확인 퀴즈 포함.

과목: 역사 · 대상: 중학교, 고등학교 · 학습 내용: 단계별 재현, 적은 병력으로 대군을 이기다, 지형과 전법, 승패의 원인

단원 내용

장평 전투

진나라가 한나라의 야왕을 점령하자 상당군과 한나라 본토의 연결이 끊겼다. 상당군수 풍정은 진에 항복하지 않고 상당을 조나라에 바쳤다. 조나라는 이를 받아들이고 염파에게 대군을 주어 장평에 주둔시켰고, 진나라는 왕흘을 보내 공격했다.

기원전 260년 · 진 대 조

상당 쟁탈

염파의 굳은 수비

반간계와 장수 교체

조괄의 출격

기병으로 후방 차단

군량 차단과 포위

조군 전멸

전국 시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참혹한 전투 중 하나.

조나라는 이후 다시 일어서지 못했고 동방 6국은 홀로 진에 맞설 수 없게 되어, 진나라의 통일을 가로막던 가장 큰 장애물이 사라졌다.

거록 전투

진나라 말기 농민 봉기가 각지를 휩쓸었다. 진나라 장수 장한은 항량을 무찌른 뒤 북상해 조나라를 쳤고, 왕리의 대군이 조왕 헐을 거록에 포위했다. 장한은 극원에 주둔하며 양쪽에 담을 쌓은 용도를 만들어 왕리에게 군량을 보냈다. 각 제후의 원군이 거록 북쪽에 도착해 영루를 쌓았지만 감히 진군을 공격하지 못했다.

기원전 207년 · 초군 대 진군

진군의 조나라 포위

항우의 병권 장악

파부침주

아홉 번 싸워 아홉 번 이기다

작벽상관

장한의 항복

진나라 말 농민 전쟁에서 결정적 의미를 가진 전투로, 진군 주력을 섬멸했다.

진나라 통치를 무너뜨릴 기초를 놓았고, 항우는 이로써 반진 연합군의 총수가 되었다.

관도 전투

원소는 허베이 4개 주를 차지해 병력과 군량이 넉넉했고, 조조는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며’ 황허강 이남을 장악했다. 200년 원소는 대군을 이끌고 남하해 여양에 진주하고 도하를 준비했다. 병력이 적은 조조는 주력을 관도에 모아 허도로 가는 요로를 지켰다.

200년 · 조조 대 원소

두 강자의 다툼

백마 포위 해제

연진에서 문추를 죽이다

관도 대치

오소 야습

원소군 붕괴

중국 역사에서 적은 병력으로 대군을 이긴 유명한 전투.

원소 세력은 이후 쇠퇴했고, 조조가 북방을 통일하는 기초가 놓였다.

적벽 대전

북방을 통일한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형주로 남하했다. 유표가 병사하고 아들 유종이 항복하자 조조군은 강릉을 점령하고 형주의 수군과 전선을 얻었다. 유비는 당양 장판에서 패해 하구로 물러났다.

208년 · 손유 연합군 대 조조

조조의 남하

손유 동맹

적벽 대치

황개의 화공

화용도로 패주

천하삼분

중국 역사에서 적은 병력으로 대군을 이긴 유명한 전투.

조조의 전국 통일이 가로막히고 삼국 정립의 기초가 놓였다.

비수 전투

북방을 통일한 전진의 황제 부견은 신하들의 만류를 듣지 않고 80여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해 단번에 동진을 멸하려 했다. 그는 “우리 대군이 채찍을 강에 던지면 그 흐름도 끊을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선봉 부융은 화이허강을 건너 수양을 함락했고, 후속 대군은 앞뒤로 천 리에 이어졌다.

383년 · 동진 대 전진

전진의 남하

동진의 전쟁 준비

낙간 전투

초목개병

전진군의 후퇴

풍성학려

중국 역사에서 적은 병력으로 대군을 이긴 유명한 전투.

전진은 와해되고 북방은 다시 분열했다. 동진 정권은 안정되었고 남방의 개발이 이어졌다.

테르모필레 전투

페르시아 제국의 왕 크세르크세스가 대군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육지와 바다로 그리스를 공격했다. 그리스 폴리스들은 연합군을 꾸렸고,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가 약 7천 명을 이끌고 테르모필레를 지켰다. 이곳은 한쪽은 가파른 절벽, 한쪽은 바다여서 가장 좁은 곳은 수레 한 대만 지날 수 있었다.

기원전 480년 · 그리스 연합군 대 페르시아

페르시아의 서방 원정

이틀간의 혈전

오솔길 우회

레오니다스의 후위

전원 순국

후위 부대의 희생으로 그리스 해군과 폴리스들이 시간을 벌었고, 같은 해 그리스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를 크게 무찔렀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적은 병력으로 대군에 맞서 죽어도 물러서지 않은 상징이 되었다.

가우가멜라 전투

기원전 334년부터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는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로 동방 원정을 떠났다. 기원전 331년 가을, 그는 티그리스강을 건너 가우가멜라 근처 평원에서 다리우스 3세가 직접 이끄는 페르시아 대군과 마주쳤다. 다리우스는 낫 전차가 돌격하기 쉽도록 미리 전장을 평평하게 골라 두었다.

기원전 331년 · 마케도니아 대 페르시아

양군의 대치

비스듬한 전진

쐐기 돌격

왼쪽 날개의 고전

다리우스의 패주

페르시아 제국은 이로써 무너졌고, 알렉산드로스는 유럽·아시아·아프리카 세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세웠다.

동방 원정은 결과적으로 동서 문화 교류를 촉진했고 그리스 문화가 동쪽으로 퍼졌다.

칸나이 전투

제2차 포에니 전쟁이 일어나자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들어가 로마군을 잇달아 크게 무찔렀다. 기원전 216년 여름, 그는 로마인의 식량 창고인 칸나이를 빼앗았다. 로마는 집정관 파울루스와 바로에게 약 8만 대군을 이끌고 결전에 나서게 했다.

기원전 216년 · 카르타고 대 로마

한니발의 이탈리아 진격

초승달 대형

중앙에서 끌어들이기

양익 포위

로마의 참패

양익 포위로 적군을 섬멸한 전쟁사의 대표 사례로, 지금도 여러 나라 사관학교에서 연구한다.

로마는 참패하고도 굴복하지 않았고, 결국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이겨 서지중해의 패권을 쥐었다.

헤이스팅스 전투

1066년 초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가 세상을 떠나자 귀족들은 해럴드를 왕으로 추대했다. 프랑스의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은 자신이야말로 정당한 계승자라고 주장하며 군대를 이끌고 영국 해협을 건너 페븐지에 상륙한 뒤 헤이스팅스에 진영을 쌓았다.

1066년 · 노르만 대 잉글랜드

노르만의 상륙

해럴드의 남하

방패벽을 둘러싼 격전

거짓 후퇴

해럴드 전사

노르만 정복 뒤 잉글랜드에는 강력한 왕권이 세워지고 봉건 제도가 더욱 발전했다.

많은 프랑스어 어휘가 영어에 들어와 영국의 언어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다른 실험

홈으로